립스틱 짙게 바르고/양인자 김희갑 부부

|

립스틱 짙게 바르고의 주인공 양인자님과 작곡가 김희갑님이

품바교육장에 오셨다

요즘 대작 아리랑을 쓴다 하셨다.

명성황후 처럼 대박 나시고~~꼬랑창에차가 백해 불어도 오뚝이처럼 우뚝서야

저희가 살맛이 납니다... 소식듣고 가슴을 쓰려 내렸답니다.진정 님들은 하늘이 맺어준 부부 입니다..

사랑하던 사랑을 가슴에 묻고

립스틱 짙게 바르고 사랑을 노래한 양인자님 ~~






―일이 부부의 인연을 가져온 거군요.

"제가 당시 남편과 사별(死別)했을 때였고 김 선생도 이혼한 상태였어요. 그즈음 '주간중앙'의 서병후 기자가 일을 냈어요. 그가 지금 '타이거 JK' 서정권의 부친이에요. 서 기자가 처음엔 전화를 잘못 건 듯했는데 대뜸 '전화한 김에 물어봅시다, 김희갑씨완 언제 결혼합니까'라고 묻더군요. 당황해 '계획이 없어요'라고 했는데 잡지에 대서특필됐어요. 제목이 '수상한 관계'였는데 외국 작곡가, 작사가의 결혼사례까지 넣어서요. 두세 달 뒤 결혼했지요."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기사(記事) 때문에 결혼했다는 겁니까.

"이 나이에 스캔들이 나면 얼마나 곤란할까 하고 생각하다 '이참에 결혼해버리자'고 한 거지요. 저와 김 선생 모두 밤샘 일을 하고 다음 날 아침 눈이 벌게서 결혼식장인 여의도 63빌딩에 갔어요."

―두 분이 함께 작사 작곡한 노래가 몇 곡이나 됩니까.

"세보진 않았지만 400곡 가까울 겁니다."

―90년대 들어선 뮤지컬도 하고 있지요. '명성황후' '몽유도원도'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뮤지컬은 연출가 윤호진씨가 제의했어요. 그분이 '명성황후'를 기획할 때 소설가 이문열씨에게 집필을 의뢰했습니다. 이문열씨는 명성황후를 '시아버지에게 대든 여자'쯤으로 생각했대요. 그런데 파고들수록 자기 인식이 잘못됐다는 걸 알고 '여우사냥'이란 희곡을 완성했어요. 두 분이 누구에게 작곡을 맡길까 상의하다 윤호진씨가 '향수'를 작곡한 김희갑이 어떻겠느냐고 하니 이문열씨도 찬성했대요. 이문열씨는 김 선생을 직접 만나기도 했어요. 그분은 사람을 척 보면 뭔가를 안대요."

―곧바로 작사 작곡에 돌입했나요.

"거기 삽입되는 곡이 60여곡인데 뮤지컬이 무엇인지 모르잖아요. 둘이 함께 영국과 미국에 가서 '레미제라블' '팬텀 오브 오페라' '미스 사이공' 같은 작품을 비교하며 봤지요. 그리곤 기초작업을 했어요. 구기동에 살 때인데 6개월 가까이 열심히 산에 다녔어요. 정작 작사·작곡은 두 달 만에 다 끝났습니다."

#부부

김희갑, 양인자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조용필이다. 김희갑은 그가 부산에서 무명시절을 보낼 때부터 알고 있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한 걸 보고 '노래는 잘하는데 왜 뽕짝을 할까'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둘은 라디오 드라마 '꽃순이를 아시나요'를 통해서 만나게 됐다. 주제가를 처음 부른 하남석이 13일 만에 대마초 사건으로 하차했다. 대타 조용필도 얼마 안 가 대마초 사건에 연루됐다. 세 번째 주제가를 부른 이가 김국환이다.

―술 잘 마시는 가수를 싫어한다는데 조용필의 술 실력도 대단하지 않나요.

"술꾼 맞아요. 1, 2차 때는 밴드 불러다 자기 좌석에 앉혀놓고 술 마시게 한 뒤 자기가 노래하고 연주합니다. 새벽 1~2시부터 다시 여의도 포장마차에서 소주 파티를 해야 끝납니다. 그래도 자기 관리에 철저해요. 남의 등에 업혀 여관에 가도 다음 날 지장이 없어요. 조영남이 그랬대요. '그 친구(조용필)는 늘 술 마시면서도 음악얘기만 한다'고. 사실 그래요. "

―시인들이 뽑은 한국 10대 가요 가운데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2위, 역시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이 9위에 뽑혔더군요.

"'그 겨울의 찻집'은 양 선생이 경복궁에 있는 '다원'이라는 찻집에서 드라마를 구상하다 쓴 겁니다."

―가수들 중에 예의 없는 사람도 있을 텐데.

"가수와 작곡가의 관계는 냉정한 겁니다. 노래를 잘 소화시킬 수 없으면 곡을 안 주지요. 그건 가수도 마찬가지고요."

―이야길 듣다 보면 연주자로서의 자부심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기타 하면 누구'라는 말도 있던데.

"전 지금도 연습을 하고 레코딩도 합니다. 지금 말한 그는 악보를 읽을 줄 몰라요. 쇼단을 할 당시에도 두드러진 존재는 아니었고 연주 때도 실수가 많더군요. 공부를 정석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조용필 보고는 왜 뽕짝(트로트)을 하느냐고 하면서 '립스틱 짙게 바르고' '정주고 내가 우네 '같은 뽕짝은 왜 만들었습니까.

"젊을 때는 어려운 거 외국거 유행하는 거만 좋아했는데 세월이 가니 달라져요."

―작곡을 빨리 하는 걸로도 유명하지요.

"가사를 초견(初見)하면 감이 잡히지요. 가사 자체에 운율이 있으니까. 보통 한숨에 하는데 대략 20~30분?"

―가장 오래 걸린 게 정지용의 시 '향수'였지요.

"가수 이동원을 아끼는데 그 친구가 1988년 '향수'를 들고왔어요. 월북시인 정지용이 해금(解禁)된 게 그 무렵입니다. 도저히 노래가 안 되겠더라고. 열달 걸려 만들었는데 동료 선후배들이 놀랐어요. '희갑이가 그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고?'라고요. 대중가요 작곡가의 자존심을 살렸다는 뜻이지요. 그게 나중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뭐가 도움이 됐다는 겁니까.

"저와 아내가 3월 26일 경주 '동리목월문화제'에서 김동리 선생의 시(詩) 열 수를 노래로 만들어 발표합니다."

―김동리 선생이 시도 썼습니까.

"그분이 소설로 알려졌지만 시도 썼어요. 김동리 선생 10주기 때 처음 기획된 건데 한 곡 두 곡 만들다 보니 열 곡이 됐습니다. 이번엔 그룹 코리아나의 리드보컬 이애숙, 김태곤 등이 부를 예정입니다.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될 거라고 자부합니다."

―여러 분야에서 활약했습니다. 연주, 작곡, 뮤지컬에 새 장르개발까지. 영화음악도 몇백편을 했지요?

"1975년부터 6년간 300편 가량했습니다. 첫 작품이 이두용(李斗鏞) 감독의 태권도 영화였는데 그 이후로 한참 동안 태권도 작품만 들어오는 거예요. 전 사랑영화, 청춘영화도 하고 싶었는데 '태권도=김희갑'이 되고 만 거죠."

―이두용 감독의 '피막'이 칸 영화제에 출품됐을 당시엔 영화보다 김 선생의 음악이 더 주목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당시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가야금, 거문고, 대금 소리까지 삽입했어요. 이 감독이 현지에 다녀온 후 '주문이 많이 올 것'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 들어오던데요."

부부는 용인 동백에 살고 있었다. 창(窓)밖으로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다. 오후 1시 시작된 이야기가 5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아내는 남편 건강을 챙기려 연신 과일과 음료, 건과류를 가져왔다. 그걸 기자도 눈치봐가며 집어먹었다.

'연예계에는 폭행사건도 많았다는데…'라고 물었다. 김희갑이 말했다. "명동 신상사는 '목포의 눈물'을 좋아했어요. 그가 들어오는 걸 보고 연주해주면 무척 좋아했죠. 충무로 '오따'는 '갈대의 순정'만 연주하면 술이며 담배를 던져줬고요. 생각하는 것처럼 살벌한 사회는 아닙니다."

김희갑 취재가 김희갑 양인자 취재로 변했다. 그걸 눈치챈 양인자가 말했다. "지난번 최하림 시인 기사에 나온 부인처럼만 해주세요." 하늘에서 수제비 같은 눈이 쏟아졌다. 두 사람 얘기 쓰려면 힘깨나 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품바공화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부님이 품바 되셨네  (0) 2011.04.14
박지원 야당원내대표 품바와 함께  (0) 2011.03.28
품바 사진 모음 2  (0) 2011.02.11
품바사진모음1  (0) 2011.02.11
천장근 품바  (0) 2011.01.24
And